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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기 달인’ 황정민, 무대에서 더 자주, 오래 보고 싶다…연극 ‘리차드 3세’
셰익스피어의 가장 매력적 악인, 객석에서 환호와 함성 쏟아져
 
양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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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리차드 3세(연출 서재형)’ 공연 장면.(뉴스컬처)     © 사진=샘컴퍼니

움츠려든 팔과 굽은 어깨, 툭 튀어나온 등뼈를 가진 신체 불구자를 연기하는 배우는 희곡 속 인물이 실제 현실로 튀어나온 듯 했다. 100분 내내 단 한 번도 팔, 어깨, 허리를 펴지 않고 역할 속에 온전히 몰입한 황정민은 연기의 장인 혹은 달인 같아 보였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몰두하며 어느 순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 말이다.
 
지난 6일 개막한 ‘리차드 3세(연출 서재형)’을 통해 10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그는 ‘왜 황정민이어야만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번 무대 위에서 황정민이 보여준 모습은 연기라기보다 육체노동 혹은 정신노동에 가깝다. 신체 장애를 표현하기 위해 온몸을 뒤튼 상태로 있어야 함은 물론, 타이틀 롤로서 엄청난 양의 대사를 내뱉어야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리차드 3세’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초기작으로, 대사 자체가 일상 언어가 시처럼 표현돼 있다. 물론 한아름 작가의 압축적이면서 세련된 각색도 한 몫을 했지만, 황정민은 웬만한 배우들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셰익스피어의 말들을 마치 본래 자신의 언어인양 마음껏 가지고 논다. 
 
▲ 연극 ‘리차드 3세(연출 서재형)’ 공연 장면.(뉴스컬처)     © 사진=샘컴퍼니
 
극은 영국 장미전쟁 시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햄릿’ ‘오셀로’ 등 4대 비극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 대표작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리차드 3세는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인 악인으로 평가받는다. 신체적 콤플렉스를 뛰어넘는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을 지닌 리차드가 친족과 신하를 전부 숙청하고 권력의 정점에 서는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왕좌를 노리는 리차드는 자신을 방해하는 형제는 물론 신하, 어린 조카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악인이다. 주위 사람들이 ‘피에 굶주린 사냥개’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리차드는 자신의 겉모습이 추악한 것과 정반대로, 내면은 아름다움과 권력에 대한 욕구로 가득 채웠다. “애초부터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없고, 나는 늘 혼자”였다고 낮게 읊조리는 리차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왕족의 핏줄임에도 추한 외모 탓에 늘 무시와 핍박을 당해야 했던 리차드는 결국 자신의 능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가장 구석진 곳에 구겨져 있던 자의 화려한 비상’이 실현되는 셈이다. 악인이 끝내 왕이 되는 전개는 결코 유쾌할 수 없으나, 황정민은 이상하게도 관객을 리차드의 편에 서게 만든다. 온갖 악행을 펼칠 때 내뱉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에 헛웃음을 치게 하다가도, 결국 왕관을 쓸 때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로 얻은 자는 피로 잃게 되리라’는 저주와 더불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힘이 빠진 자는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긴박한 초·중반 전개와 달리 왕좌에 오른 이후 리차드의 행보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대본 자체의 빈약함은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연출로 채워진다. 특히 넓고 깊은 토월극장 무대를 십분 활용한 연출은 장관을 만들어내며 진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 연극 ‘리차드 3세(연출 서재형)’ 공연 장면.(뉴스컬처)     ©사진=샘컴퍼니
 
요즘 공연계에서 드문 ‘원 캐스트’를 통해 역할 사이 호흡을 끈끈히 만든 것 또한 한 몫을 했다. 정웅인, 김여진 등 주로 TV를 통해 보던 스타들의 무대 귀환은 반가웠고, 김도현, 박지연, 임기홍, 김병희, 이갑선 등 실력파 배우들의 활약과 1인 2역도 보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특히 소리꾼 정은혜를 통해 서양 희곡 안에 한국적 색채를 입힌 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 흥행의 8할은 황정민에게 돌리는 것이 맞겠다. 리차드 3세를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악인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커튼콜 때 온몸이 굳어진 리차드에서 다시 황정민으로 무대를 걸어나오는 잠깐의 시간 동안 전율이 느껴졌다. 관객들이 기립한 객석에서는 근래 들을 수 없던 폭발적인 환호와 함성이 오랜 시간 쏟아져 내렸다.
 
황정민은 개막 전 “관객들이 저에게 영화가 아닌 연극만 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정말이지 황정민을 무대에서 더 자주, 오래 만나고 싶다. 오는 3월 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리차드 3세‘ 
원작: 셰익스피어 
각색: 한아름 
연출: 서재형 
무대디자인: 정승호 
공연기간: 2018년 2월 6일 ~ 3월 4일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진: 황정민, 정웅인, 김여진, 김도현, 정은혜, 박지연, 임기홍, 김병희, 이갑선 외
관람료: R석 8만 8천원, OP석 7만 7천원, S석 6만 6천원, A석 3만 3천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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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희 기자
뉴스컬처/공연문화팀장
yang@newsculture.tv
 
2018/02/20 [13:27] ⓒ 뉴스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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